아즈찌 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중세유럽에서는 봉건제도와 카톨릭교회가 각각 속계와 정신계에 있어서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었으나, 십자군·르네상스·종교 개혁·지리상의 발견 등에 의해서 그 지배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상공업자등의 도시시민과 자영농민 등의 신흥세력의 대두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절대왕정의 경향을 강화하고, 활발한 지중해무역을 통하여 동양의 향료, 차, 비단, 약품의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15세기 중반 오스만 터어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루트를 개발해야만 되었다. 그리하여, 포르투갈은 희망봉의 발견과 인도 향로 발견에 성공, 16세기에는 동쪽 항로에 의한 무역루트를 장악했다. 한편 스페인은 콜럼부스의 서인도제도 발견,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로 개척 등 서쪽 항로로 필리핀에 도달, 1571년에는 마닐라를 점령하여 동양무역의 근거지로 삼았다. 이와같이 동서로 부터 닥쳐오는 유럽 세력의 동양 진출이, 드디어 1543년 2명의 포르투갈인이 큐우슈우 남방 타네가시마(種子島)에 표착함으로써 일본에도 닥쳐왔다. 그것은 결코 우연한 표착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의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의 내항과 함께 총의 전래, 기독교의 전파가 일본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주목해야 될 사항이다.

오오닌의 난 이후 계속된 전란의 시대는 16세기 후반이 되자 비로소 통일의 기운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선두 주자가 바로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識田信長)였다. 그는 센고쿠다이묘오의 한사람이었으나 차례차례로 다른 다이묘오를 복속시키고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는 1543년 타네가시마에 전래된 조총을 국산화하고 대량생산하게 하여 소총부대를 편성, 재래의 전투양식을 바꾸게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1573년, 노부나가는 쿄오토로부터 장군을 쫓아내고, 무로마찌 막부를 멸망시키고, 아즈찌(安土)에 자기의 거성을 짓고 천하통일 사업에 전념했다.

한편 노부나가는 상업이나 수공업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하고(樂市·樂座), 기독교를 보호 장려하고, 포르투갈이나 스페인과 무역을 했다(남만무역). 기독교는 스페인 예수회 소속 선교사인 프란시스코·자비엘이 가고시마에 왔으 때부터 전도가 시작되었다(1549).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인(당시 이들을 남만인이라 불렀다)은, 기독교 포교를 위해 무역을 하고, 노부나가는 불교세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써 기독교를 보호하고, 또한 무역에 의해 유럽의 앞선 문물을 입수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는 천하통일 사업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심복가신인 아케찌 미쯔히데(明智光秀)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된다.(本能寺의 변 : 1582)

노부나가 사후, 권력을 장악한 것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였다. 히데요시는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었으나 무사가 되어 노부나가 밑에서 출세를 거듭, 노부나가의 휘하의 가장 유력한 무장이었다. 그는 아케찌 미쯔히데를 처단하고 주도권을 잡고, 오오사카에 성을 건설,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천하통일 사업을 계승했다. 그는 토지조사를 단행, 전답의 수확고를 조사하여 세율을 정하는 것에 의해 농민지배를 확고히 다지고, 농민들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농민으로부터 무기를 거두어 들였다(칼사냥이라고 부름). 이에 따라, 병농분리가 실시되고 장원제가 소멸되었다. 히데요시는 1590년 끝내 천하통일을 완성했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출병했으나 두 번 다 실패로 끝났다.(일본에서는 文祿慶長의 役이라고 한다). 노부나가·히데요시가 활약한 시대를 아즈찌·모모야마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문화는, 새로이 등장한 센고쿠다이묘오나 호상의 영향으로 호화스럽고 웅대한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성(城)이다. 아즈찌·모모야마라는 시대의 이름도, 노부나가의 아즈찌성과 히데요시의 모모야마성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시대의 다이묘오는 성을 자기 영지의 중심 평지에 짓고, 주위에 부하들이나 상공업자들을 살게하여 죠오카마찌(城下町)를 만들었다. 성은 적을 막는 것 뿐만 아니라, 다이묘오가 거주하는 곳이며, 정무를 행하는 관청이기도 했기 때문에,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서 웅대하게 지어야 했다.

다도가 이 시대에 성행했다. 다도에 쓰는 차(말차)는, 카마쿠라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선승들 사이에서 약으로서 사용되었다. 차를 마시는 풍습은 무로마찌시대에 귀족이나 무사, 부유한 상인들 사이에서 번져나가고, 그것을 센노 리큐우(千利休)가 다도라고 하는 예법으로서 완성했다. 리큐우는 다도의 정신은 간소한 속에 심오하고 풍부한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여, 그 정신을 和敬정숙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또 이 시대에 남만무역을 통해, 여러가지 서양문물이 일본에 들어왔다. 현재도 쓰여지고 있는 빵, 즈봉, 카스테라 등의 외래어는 당시 포르투갈어로부터 일본어에 유입된 것들이다. 예수회 선교사이며 포르투갈인인 로드리게스는, 히데요시의 통역을 담당할 정도로 일본어가 능통한 사람으로 『日本大文典』을 편찬했는데, 이는 외국인이 쓴 최초의 일본어 문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