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시대

기원전 3세기경 벼농사가 시작되고 동이나 철 등의 금속기가 사용되었다. 쌀은 수 천년 전 열대아시아에서 재배화된 것으로, 일본에는 중국남부로 부터 직접, 혹은 한반도 남부를 경유하여 전해졌다고 말해지는데, 벼농사의 전파에 의해 일본은 수렵채집경제에서 농경시대로 본격적으로 이행해 갔다. 당시의 농사짓는 모습은 동탁에 그려진 그림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동탁은 이 시대의 유적에서 수많이 출토되고 있고 제사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사람들은 벼농사 때문에 저지에 살게끔되고, 거기에 촌락을 형성했다. 이 시대의 모습을 전해주는 시즈오카시에 있는 토로 유적에는 수전이나 주거 유적과 함께 쥐가 들어가지 못하게 바닥을 높게 만든 고상식 창고 유적이랑 목제 농구가 남아있다.

이 때의 토기는 전시대의 것보다 튼튼하고 모양도 더 세련된 것으로 바뀌었다. 이들 토기는, 토오쿄오 분쿄오구의 야요이쵸오(彌生町)에서 최초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야요이식 토기라고 부른다. 또 기원전 3세기경부터 약 600년간을 야요이시대라고 한다.

1~3세기경이 되면, 벼농사 기술의 발달에 따라 촌락이 점차 커져 나라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유력한 지도자가 나라의 왕이 되고 강한 왕은 약한 왕을 복속시키고 더욱 큰 나라를 만들었다. 이 때의 일은 거의 알 수 없지만, 중국의 『후한서』속에 1세기경, 왜인의 나라에서 사신이 왔기 때문에 후한의 황제가 금인(金印)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약 200년전 후쿠오까현에서 한 농부가 우연히 땅속에서 그 금인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漢倭奴國王]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나라는 후쿠오카시 부근에 있었던 작은 나라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 중국 『위지』의 「왜인전」에 의하면, 왜인의 나라는 30개 정도의 소국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여왕 히미꼬(卑彌呼)의 야마타이국(邪馬台國)이 가장 강력하고, 히미꼬는 3세기초 위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다고 한다. 이 야마타이국이 어디에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는 상태이다.